TL;DR

초연결 사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가깝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만 서로가 다른 커뮤니티에 속한 것일 뿐.

오늘의 그림은 19세기 말에 그려진 "고다이버 부인" 이라는 존 코일러의 유화입니다.
저는 존 코일러라는 화가는 모르지만 이 그림은 종종 보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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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발가벗은 여성에게서는 순결함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배경에 그려진 돌로 된 커다란 집들은 여성이 처한 상황을 보면 두렵게도 보입니다.
대낮에 발가벗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건 노출증 환자가 아니고서는 정말 수치스럽고 두려운 일이니까요.

(반대로 그녀가 올라 탄 말은 오히려 전신을 가리고 있습니다.
만약에 말마저 발가벗었다면, 그림에서 말이 지닌 자연의 에너지가 너무 부각되어서 메시지가 전달이 안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 속 고다이버 부인의 이야기는 실화보다는 "전설"에 가깝습니다.
가혹한 정치로 영민들을 고통스럽게 하던 남편에게 선정을 베풀 것을 아내가 간청하자 심드렁하게 그럼 "옷이라도 벗고 영내를 한바퀴 돌면 생각해보겠다" 라고 했었다나...
아무튼 그녀는 그것을 해내었습니다.
영민들은 그녀를 위해 문을 걸어 잠그고 통행을 하지 않았다고 하며,
누군가 엿봤다가 눈이 멀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아래 잠깐 다뤄지는 Peeping Tom 그림 참조)

그리고 이 설화는 간혹 벌어지는 알몸 시위의 시초 같은게 되었습니다.
개인이 느낄 수 있는 수치를 무릅쓰고 발언에 나선다는 건 그만큼 그가 믿는 것이 개인보다 대의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겁니다.


저는 이 그림을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말 위의 나신의 여성은 현대의 우리들이라고요.

우리는 온라인에 밀접한 생활을 즐길수록 벌거벗은 여성 처럼 점점 많은 정보가 외부로 노출됩니다.
민감한 개인 사상 마저도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에 떠도는 재미 삼아하는 정치 성향 테스트와 어떤 기사를 퍼나르고 읽는지,
어떤 댓글을 다는지만 알아도 이제 사람이 어떤지는 너무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옛날부터 어르신들이 말하는 "입조심"하라는 말은 더 이상 맞지가 않습니다. 그 분들은 입조심 안 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시대를 겪으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엔 뭘 키보드로 옮겨적고, 뭘 좋아요를 누르고, 뭘 영상에 담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젊은 세대는 입조심이라는 단어에서 댓글과 주고 받은 카톡내용, 닉네임 등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 겁니다.

이 괴리가 유래없이 큽니다.

농경사회에서는 노하우의 전수가 핵심이었으나 고도의 기술 발전을 통한,
가상의 세상이 실제 세상 위에 덧씌워진 오늘날은 비슷하지만 다르거나, 완전히 새로운 것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신세대는 구세대의 가르침이 유용하지 않거나 현실과 동떨어진다고 툴툴대기 시작했으며, 구세대는 젊은 것들이 말도 안듣는다고 툴툴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문제는 쭉 있어 왔으나 그 괴리가 인터넷 시대가 되며 지나치게 커졌습니다.

이 때문에 그간 겪은 바 없는 세대 차이가 발생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가상"의 신세계를 젊은 세대는 체험하며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성숙해 갔지만, 구세대들은 이걸 먼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정리하고 유지해 나가야 할 "실제" 세계 문제만 해도 복잡했기 때문입니다.

뻥 좀 치면 인류사 처음으로 구세대가 신세대보다 세상을 목격하는 것 자체가 늦었던 시기 입니다.

사회적으로 미숙하고 힘 없는 이들이 그들보다 영향력 있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고자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마치 그림 속 고다이버 부인 처럼요. 다른 점이 있다면 고다이버 부인의 위치에 사기꾼도, 노출광도, 광신자도 설 수 있습니다. 그건 결국 개인이 얼마나 올바른 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고다이버 부인은 인터넷 세상으로 비유하면 여러가지를 상징할 수 있습니다.

  1. 인터넷 시대의 구세대에게 깨달음이나 선을 알려주는 신세대를 의미할 수도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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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 시대에서 소신을 밝히고 그것을 헤쳐나가는 개인과 그것을 믿고 응원을 보내는 대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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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잘못된 믿음으로 스스로를 수치 속으로 몰아 넣는 어리석음과 타인에 대한 관음증과 경멸로 삶을 살아가는 못 된 이들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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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지금은 그 어느 때 보다 강력하게 연결된 "초연결 시대"입니다. 그리고 그 연결은 지속적으로 강화될 겁니다. (일례로 아마존에서는 신생아를 등록하면 평생 고객으로 타게팅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론과 미디어 뿐만 아니라 그 구성원들이 실제로 무슨 말을 하려 하고 생각을 하는지 조금만 시간을 내면 다 찾아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여론 조작이 의심스럽거나 특정 정치의도를 지닌 집단이다 싶으면 시간을 들여서 검색해 보고 교차 검증을 하면 알아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친구나 지인의 경조사는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만 봐도 눈치 챌 수 있습니다.
과거라면 해외로 이민 간 친구는 영원히 이별이겠지만 이제는 틈틈이 영상통화도 할 수 있습니다.

타인과 현상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 주어졌음에도.

그럼에도 우리는 외롭습니다.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인터넷에서 매일 마주치는 부정적인 생각과 활력을 잃은 삶에 대한 고민들.
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연결되어 있음에도 외로울까요?

온라인의 연결은 강력해졌지만 거기에 속한 구성원들이 물리적으로 가까운 이들과 다른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게임이나 커뮤니티나 온라인 동호회 활동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들 내 편인 거 같습니다.
당연한 것이 나한테 싫은 소리를 해 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니까요.

페이스북이나 vlog 올리는 사람들이 그들이 올리는 내용을 직장동료나 부모형제나 친구가 보고 댓글을 달아주는 관계라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철저하게 사는 가상의 세상과 현실 세상이 분리 된 사람들은 불일치에서 외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심지어 온라인 세상 속에서마저 본인이 속한 자리가 없다고 느껴지면 더 넓은 세상에서 고립무원이라 느껴질 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은 조상들이 듣도보도 못한 상황입니다.
그렇지만 구세대도 이젠 온라인 세상에 발을 들여 놓았고, 이제 우리는 온라인 세상에도 바깥 세상 처럼 단절된 커뮤니티가 강화되고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우린 인터넷 초창기 때만 해도 사람들이 모든 것을 공유하고 이상적으로 나갈 것이라 착각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 세상처럼 나이와 교육 수준, 취미, 종교, 정치적 신념 등으로 단절된 커뮤니티가 들어서고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는" 편향 된 인공지능의 추천 알고리즘 등을 통해 닫힌 결론으로 사람들이 내몰리고 있습니다.

우린 그 어느 때 보다 열린 세상 속에 살고 있으나 그 어느 때보다 닫힌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들여다 보는 넓은 세상은 작은 모니터를 통해서 제한적으로만 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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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Jean_Carolus,_Peeping_Tom,_oil_on_panel,_46.5_x_32.5_cm,_private_collection.jpg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4/Lady_Godiva_by_John_Collier.jpg
https://www.flickr.com/photos/49187729@N02/6330962530
http://szabolaszloistvan.blogspot.com/2013/03/strategies-for-teaching-older-people.html